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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_230208] 알고보는 정신의학 발전사1_윤형곤 가나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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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가나병원
    등록일 2025-09-10 15:56
    조회18

    본문

    https://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1 

     

    시민시대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파일을 다운받아 보시면 사진과 함께 보다 재미있게 내용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나병원 편집부

     

     

    알고 보는 정신의학 발전사①

    가나병원 병원장 윤형곤


    우리나라 정신치료는 1995년 12월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고 정신병원의 의료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체계화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정신의료서비스에 대해 늘어나는 사회적 요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정신병원이 급속히 늘어나게 되었다. 최근 우울, 불안, 불면 등 신경성 정신질환이 대두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가 많이 늘어나고, 2023년부터 정신병원은 보다 쾌적한 입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이루었다.


    서비스 증가에 있어 아쉬운 것은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병상수가 무분별하게 증가하고 지역사회의 배려가 미흡했던 관계로 세련된 정신보건서비스 전달체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질환 예방체계, 정신과적 응급·구급서비스 보급, 퇴원환자의 지역사회정신보건서비스 제공 등에 있어 애로점을 갖고 있다. 현재 정신보건의료서비스 수준은 가까운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국가보다 많이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보다 선진화된 정신의료서비스 제공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신적 어려움이 있을 경우 친구나 지인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자연치유에 의지하거나, 잡귀를 쫒는 굿과 같은 미신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문적인 정신과적 상담은 최종 선택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 국가에서도 이러한 경향의 시기가 있었는데, 정신의학적 치료가 정착하면서 정신과 상담이 많이 친숙해지게 되었다. 우리도 정신의학 발전사를 알아보는 것은 정신의학과 친숙해지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최초의 정신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18세기 말까지 외과를 제외하고는 의학의 모든 전문분야가 마찬가지였지만 정신과psychiatry라는 것도 존재하지는 않았다. 기원전 25세기 이집트 임호테프(Imhotep)란 사람은 우울증 환자를 신전에 데리고 가서 하루를 보내게 했다 하여 정신장애를 치료한 최초의 의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정신질환자 관리 지침서가 있어왔고, 고문헌에 주요 정신질환에 대한 묘사가 있어 왔다. 그렇지만 이 시기 공식적인 정신치료 의료서나 치료법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오래전 정신이상자를 말하는 ‘루나틱(lunatic)’이란 단어는 발작 주기가 달의 주기와 연관이 있다고 믿었기에 오래 전 생겨난 단어이다. 루나틱은 보름달이 밝아 수면 박탈로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기에 생겨난 말로 해석된다. 단어의 의미가 정신이상과 연관이 된 계기는 해의 반대편에 있는 달의 음산함, 어둠, 두려움 등이 문학작품에 인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렇듯 정신의학 이전 정신이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미신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었다.


    정신병리학적으로 ‘정신증(psychosis)’의 주요한 정의는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현실검증력이 결여된 것’이다. 정신분열병과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은 현실검증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현실검증장애가 발견되지 않는 신경증과 구별된다. 18세기 말까지는 현실검증력 장애 유무를 분리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 시기 광인은 정신병적 분류에 의해 구분되었기 보다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 술주정뱅이, 범죄자 등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독일어로 광인을 의미하는 Narrheit에서 Narr는 중세에는 인간의 몽매함과 자연적 결손 상태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생활방식이나 미친 상태를 의미하다가 말 많은 재담꾼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의 『광인들의 배』를 보면 배 안에는 정신이상자 외에도 타락한 자, 역병 환자, 비정상적인 행태를 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이들은 치료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격리와 분리의 대상이었고, 배는 이들을 영원히 격리시켜 마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7세기 말부터 광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나, 보호받지 못한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들은 구빈원이나 빈민원 말뚝에 붙들어 매어 두었다. 정신이란 보이지 않는 악마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여 일상생활 속에는 어리석은 오해와 편견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집안에 광인이 있었다는 것을 숨기려고 하였다. 대개 광증의 걸린 사람은 수용소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두어 두도록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돌볼 몫은 지역사회가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 주어졌다.


    그래도 어느 사회에서나 정신질환은 실재하였다. 18세기부터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빈곤층에 대한 고민이 심각해지기 시작하면서 수용소가 생겨났다. 1789년 프랑스 정치혁명 이후 시민의식이 대두되고 치료권리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수용소에서도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다. 이것을 도덕치료라고 한다.

    당시 수용소가 늘어난 것은 정신이상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일탈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기서 수용소 입원환자가 늘어났다는 것이 환자를 진단하는 기준으로서 생물학적 의학의 진료방식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용소 입원이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정신치료가 가능해지고 도덕치료를 위한 개혁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용소는 정신과 치료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수용소는 사회구조나 경제발전양식이 국가들마다 본질적으로 달랐음에도 모든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영국과 미국은 자발적으로 수용소들이 생겨났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마구잡이식으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극단적 중앙집중 관리체계이었기에 정신보건정책도 파리를 중심으로 하달식으로 이루어졌다. 수용소도 파리 지역에만 세워졌고 의과대학도 파리 소르본 대학 하나만 있었다. 프랑스가 의료를 중앙집권화 했다는 것은 “의사경찰(medical police)”이라는 직종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은 1871년까지 39개 주가 모인 연방 체제였고, 각 주마다 중앙행정체제를 두었으며, 수용소가 있는 주도 있고 뒤쳐진 주도 있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의과대학이 주마다 분산되어 있었는데, 대학이 있는 주의 왕조는 왕조의 번영을 위해 대학을 적극 육성하였다. 이러한 점이 독일 공국들을 번영하게 하였고, 수용소의 정신과 의사들은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구하면서 수용소 개혁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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